한국 경제, 저성장 늪에 빠지나? 고성장 기업 감소와 산업 정책의 전환 필요성
한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 정부를 비롯한 국내외 기관들이 올해 한국의 성장률을 1% 아래로 낮춰 잡으며, 0%대 성장률이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수출 주도형 개방경제인 한국에게 통상 불확실성 확대는 치명적인 타격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국내 경제의 핵심 축인 고성장기업들마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의 관세 조치 등 외부 변수뿐만 아니라, 내부 경제 성장 동력 자체가 약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이 장기 저성장 국면으로 고착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기업 활동 지원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0%대 성장률, 2009년 이후 최악의 경제 상황
아시아개발은행(ADB)은 한국 경제가 미국의 관세 조치로 인한 수출 둔화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8%로 전망했다. 이는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치와 동일하며,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한국의 성장률을 1% 내외로 예측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초 1.8% 성장을 예상했지만, 조만간 발표될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는 성장률 전망치를 0%대로 하향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0%대 성장을 기록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던 2020년(-0.7%)을 제외하면 2009년 이후 16년 만이다. 2009년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가 비교적 선방했던 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만약 예측대로 한국이 0%대 성장에 그친다면, 1998년(-4.9%) 이후 27년 만에 최악의 경제 성적표를 받게 되는 셈이다.
고성장 기업 감소, 한국 경제의 체력 저하
더 큰 문제는 우리 경제의 체력 자체가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일시적인 침체가 아닌 구조적인 저성장 가능성에 대한 경고로 해석될 수 있다.
성장 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산업 역동성 약화가 꼽힌다. KDI 김민호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산업 전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슈퍼스타' 역할을 했던 고성장기업 비중이 감소한 점을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연평균 매출 증가율이 20%를 넘는 기업이 2009년 전체 기업의 11.9%에서 2020년 4.6%로 급감했으며, 2022년에도 8.1%에 머물렀다. 특히 기업 성장의 '황금 구간'으로 불리는 업력 8~19년 차 기업에서 고성장기업 비중이 2009년 약 14~15%에서 2022년 10% 이하로 떨어진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는 신생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여 산업 전반을 견인하던 기존의 성장 구조가 무너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보고서는 "8~19년 구간에서 고성장기업 비중이 현저히 줄어든 현상은 기업이 성장하기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자원이나 제도적 환경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창업 기업 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5년 생존율은 33.8%로 OECD 평균(45.4%)보다 10% 이상 낮은 수준이다. 이는 '창업 → 성장 → 정착'으로 이어지는 성장 사다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고성장 기업의 중요성, 생산성 향상에 기여
고성장기업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여타 기업보다 총요소생산성이 평균 28% 높아 일반 기업과 차별화된다. 또한 매출 비중이 1% 증가할 때 산업 전체 생산성 성장률이 1%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는 소수의 고성장기업 활동이 총생산성 성장률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성장 중심축이 흔들리면서 경제의 생산성도 함께 떨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2001~2005년 2.1%였던 한국 경제의 총요소생산성이 2024~2026년에는 0.7%로 급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 정책의 전환, '창업'에서 '성장'으로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산업 정책의 무게추를 '창업'에서 '성장'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단순한 창업 지원을 넘어, 확장 단계에 진입하는 기업들이 겪는 인재 부족, 해외 진출의 어려움, 네트워크 부족 등 다양한 장벽을 완화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창업 관련 정부 예산은 3조 3000억 원에 달하지만, 중견기업 육성을 위한 대표적인 지원 프로그램인 '스케일업 팁스' 예산은 1468억 원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스케일업 금융' 사업 예산은 작년 1000억 원에서 올해 600억 원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 정책은 기존의 창업 초기 중심의 지원을 넘어 기업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며 "스케일업 생태계 개선은 기업 수준을 넘어 산업과 경제 전반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결론: 저성장 극복을 위한 정책 전환과 기업 생태계 개선이 시급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고성장 기업 육성을 위한 정책적 지원과 기업 생태계 개선이 시급하다. 창업 지원에 집중되었던 정책 방향을 전환하여,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이 스케일업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또한, 기업들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해소하고, 혁신적인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제도적인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뒷받침될 때, 한국 경제는 다시 활력을 되찾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지표 | 2009년 | 2020년 | 202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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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균 매출 증가율 20% 초과 기업 비중 | 11.9% | 4.6% | 8.1% |
업력 8~19년 차 고성장기업 비중 | 약 14~15% | 10% 이하 |
자료: KDI 보고서
정책 제안
- 성장 단계별 맞춤형 지원: 창업 초기 기업뿐만 아니라, 성장기에 접어든 기업을 위한 자금, 인력, 기술 지원 확대
- 규제 완화 및 제도 개선: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고, 혁신적인 사업 모델을 지원하는 제도 마련
- 글로벌 시장 진출 지원: 해외 시장 정보 제공, 해외 네트워크 구축 지원, 수출 관련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 산학연 협력 강화: 대학 및 연구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기술 개발 및 인력 양성 지원
- 투자 생태계 조성: 벤처 캐피탈 등 투자 기관의 투자 활성화를 위한 세제 혜택 및 투자 환경 개선
추가적인 고려 사항
- 인구 구조 변화: 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른 노동력 감소 및 소비 위축에 대한 대비책 마련
- 디지털 전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디지털 기술 경쟁력 강화 및 디지털 인프라 구축
- 기후 변화: 기후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및 친환경 산업 육성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